2008년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중국 대표로 참석한 탕자쉬안 중국 국무위원이 '경영미래'라는 제목의 중국어판 이 대통령 자서전을 전달하고 있다. 탕자쉬안은 중국의 외교 부장, 국무위원으로 남북한 문제에 깊이 관여했다./조선일보


오는 31일 개막하는 경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이 참석합니다. 11년만의 방한인데, 우여곡절 끝에 우리 정부는 2014년에 이어 시 주석을 다시 국빈으로 예우하기로 했습니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국빈을 맞아 정상회담을 갖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을 겸하고 있는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시진핑 주석의 방한 수행단에 포함바다이야기 릴게임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는데, 중국 외교부장이 수행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입니다.
왕이는 정치국 위원을 겸하면서 2023년 7월 외교부장을 다시 맡을 정도로 중국 공산당과 정부 내에서 비중이 큰 인물입니다. 더욱이 중국은 차기 APEC 의장국이기에 그의 불참은 더욱 도드라져 보입니다. 서울의 고위 외교 소식통은 “시 올스
주석이 11년 만에 한국을 찾는데, 왕 부장이 수행하지 않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한국에 대한 불만을 외교부장을 불참시키는 방법으로 표출한 것 아니냐고 분석 합니다.
격식 파괴, 탕자쉬안의 1999년 방한
이럴 때 제 머리에 떠오르는 인물은 1999년 중국 외교부장이었던 탕자쉬안1000만원투자
(唐家璇) 전 국무위원입니다. 그는 베이징대 동양학부 일본어과 출신으로, 한중 수교 당시에 부장조리(차관보)로 활동하며 수교 실무를 총괄했습니다. 이어서 중국 외교부 내에서 ‘한반도통’으로 활동하며 양국 간 갈등 상황에서도 비교적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준 외교관으로 손꼽힙니다.
제가 1999년 12월 외교부를 담당하면서 처음 취재한 외국 황금성나비
인사가 탕 부장이었습니다. 탕 부장은 그해 12월 10일 방한, 2박 3일 동안 김대중 대통령 예방, 외무장관 회담, 한중우호협회 만찬을 통해 양국 관계를 ‘21세기 동반자 관계’로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특히 홍순영 장관과의 회담을 통해 주룽지 총리와 츠하오톈 국방장관의 2000년 방한을 확정 지은 것은 의미 있는 성과였습니다.
당수산주
시 회담에 배석한 정부 당국자는 “탕 부장은 회담 내내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한 단계 더 높이려 한다’는 말을 반복하며 중국 지도부의 확고한 의지를 전달했다”고 회고했습니다.
탕 부장은 방한 중 홍순영 장관과 함께 경기도 이천을 방문하는 ‘온천 외교’를 가졌습니다. 양국 외교장관은 서울에서 이천으로 가는 16인승 고급 미니버스에 탑승, 나란히 앉아 겨울 풍경을 감상하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후 도자기 공장을 둘러보고, 이천의 온천에서 만찬을 가지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1999년 12월 10일 홍순영 외교통상부 장관이 방한한 탕자쉬안 중국 외교부장을 안내하고 있다. 홍 장관과 탕 부장은 11일부터 이틀간 버스를 함께 타고 경기도 이천을 오가며 '온천 외교'를 가졌다. /조선일보


의전상의 이유로 함께 온천탕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알몸 외교’라는 말이 나올 만큼 파격적이고, 허심탄회한 교류의 장이었습니다. ‘온천 외교’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정도로 그 시절의 한중 외교에는 여유와 품격, 그리고 사람 냄새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후에도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여러 차례 취재했지만, 홍순영-탕자쉬안 장관처럼 격식을 차리지 않고 만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기자들 환영합니다”
탕 부장을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4개월 뒤인 2000년 4월이었습니다. 그해 초 취임한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의 중국 방문을 동행 취재,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탕 부장을 다시 취재하게 됐습니다. 이 장관은 탕 부장을 만나 6월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중국의 지지와 협력을 요청했습니다. 탕 부장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축하하며 “평화 과정의 눈부신 진전”이라 평가했습니다.
그는 “남북이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을 살려 긍정적 결과를 얻길 바란다”고 말하며 회담 내내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 회담은 예정 시간보다 1시간 반이나 더 길어져 3시간 30분 동안 진행됐습니다. 외교 장관 회담이 4시간 가까이 진행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탕 부장은 이날 회담이 시작되기 전에 이 장관과 동행한 한국 기자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이례적으로 한국 기자들을 향해 “(외교부 기자단이) 멀리서 와 주셔서 고맙다. 중국 외교부에서도 여러분의 취재를 최대한 돕겠다”고 했습니다. 외국 외교 수장이 기자단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한국 기자들과 관련, 재치 있는 말을 했습니다. “한국의 기자들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무섭다. 첫 번째 무서운 건 미국 기자들이고 다음이 한국 기자들이다. 아직 리펑(李鵬)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북한 방문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한국 언론이 언제 갈지 날짜까지 정해버렸다.”
탕 부장의 이 발언으로 회담장에는 웃음이 터졌다고 합니다. 탕 부장은 당시 한국의 한 매체가 1면에 눈에 띄게 리펑 위원장이 5월 중에 북한을 방문한다고 보도한 것을 지적한 겁니다. 탕 부장은 이 외에도 중국과 러시아가 ‘핑퐁 게임’ 하듯 북한으로 송환한 ‘7인의 탈북자’사건이 발생하자, 한국 언론이 중국의 비인도적 처사를 강하게 비판한 것을 염두에 뒀다고 합니다. 한국의 신문·방송에 대한 불만을 직설적으로 표출할 수도 있는데,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탕 부장은 이정빈 장관과의 회담에서 생각지도 않은 제안을 했습니다. 탕 부장은 이 장관과 이야기하는 도중 즉석에서 “중국을 방문한 한국 기자들을 한 번 대접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의 지시에 따라 한국 기자들은 중국 외교부 관리들과 생각지도 않은 만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때 남북한을 담당하는 중국 외교관들을 만나 이후로도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한중일 3국 협력에 힘 실어
탕 부장은 이후 국무위원으로 승진해 한반도 문제는 물론 중·미, 중·일, 중·러 관계 등 주요 외교 현안을 총괄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중국 국가주석 특사 자격으로 참석했으며,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한국을 찾아 박 대통령을 예방하기도 했습니다.
탕 부장을 세 번째로 만난 것은 그가 국무위원에서 물러난 후인 2011년이었습니다. 그해 10월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의 출범을 기념하는 국제회의가 “평화와 공동 번영의 신동북아 시대를 위하여”라는 주제하에 개최됐습니다. 한국에서는 이홍구 전 총리, 일본에서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중국에서는 탕자쉬안 전 국무위원이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중국의 탕자쉬안 전 국무위원(오른쪽)이 2011년 10월 19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 창립 기념 회의에 참석,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과 나란히 앉아 대화하고 있다./조선일보


신봉길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 초대 사무총장의 소개로 나온 탕 부장은 “한·중·일 3국은 명실상부한 이익 공동체”라고 선언하며, “역사 문제와 현실적 갈등이 존재하더라도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의 길을 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또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당사자들이 대화에 나설수록 안정된다”며, 북핵 6자회담을 “평화의 문을 여는 황금 열쇠”라고 표현했습니다. 탕 부장은 TCS 회의장에서 공노명 전 외교부 장관 등과 의견을 교환하며 적극적으로 움직였습니다. 그가 TCS 국제회의 전에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을 직접 찾아 젊은 직원들을 격려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탕 부장은 이후에도 박병석 전 국회의장 등 한국의 중국통들과 막후에서 만나며 한중관계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1990~2010년대 한중 관계에는 비교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탈북자, 역사 문제로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국 외교부장이 한국 기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유머를 섞어 회담 분위기를 이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예우
국립외교원에서 발간한 김하중 전 주중대사(나중에 통일부 장관) 대담 회고록에 따르면 탕자쉬안 위원은 퇴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깎듯이 예우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2004년 6월 28일부터 7월 2일까지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DJ는 6월 30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군사위 주석과 만나 한반도 정세와 6자회담 재개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이어서 이날 저녁 탕자쉬안 국무위원 주최 만찬에 참석했는데, 탕 위원이 다음과 같은 일화를 남겼다고 김하중 대사가 회고록에서 증언했습니다.
“그날 저녁(6월 30일) 탕자쉬안 국무위원 주최 만찬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탕 국무위원은 자신이 김 전 대통령께 인사를 드리지도 않고 만찬장에서 영접하는 것이 죄송해서, 먼저 다오위타이 내 김 전 대통령 숙소로 가서 인사를 드린 다음, 만찬장에 돌아와 김 전 대통령을 영접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탕 국무위원이 김 전 대통령 숙소로 와서 30분 정도 환담했습니다 탕 국무위원은 먼저 후진타오 주석이 몽골 대통령과 아르헨티나 대통령 방중 등 불가피한 외교 일정과 국내 정치 일정 및 지방 출장으로 인해 김 전 대통령을 만나 뵙지 못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금일 오후 자신에게 특별히 후 주석의 미안함과 각별한 안부를 전해 달라고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환담 후 탕 국무위원은 자신이 다오위타이 내에 준비한 만찬장인 양위안자이(養源齋) 로 갔으며, 곧이어 김 전 대통령 일행도 만찬장으로 갔습니다. 탕 국무위원은 만찬 전 인사말을 통해, 중국을 대표하여 열렬히 김 전 대통령 내외분을 환영하며, 중국에서 김 전 대통령의 햇별정책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장 주석이 언급한 바와 같이 햇볕정책은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이 되었고 중국 인민들은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김 전 대통령의 비전과 철학은 중국 지도자들의 생각과 유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지역 평화 안정을 위한 기여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탕 위원은 만찬장에서 김 전 대통령을 만날 수도 있는데, 먼저 인사를 드리지 않은 것은 결례라며 굳이 숙소를 찾아 머리를 숙인 겁니다. 그의 퇴임한 한국 대통령에 대한 배려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유와 배려 보이지 않는 한중관계
지금의 한중 관계에는 그런 여유와 배려가 보이지 않습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차기 APEC 의장국으로 한국에 마지못해 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14일, 미국 내 한화오션 자회사 5곳을 대상으로 거래 금지 제재를 발표했습니다. 역대 중국 외교부장 중 가장 힘이 세다는 왕이 부장은 한국을 건너뛰고 다른 나라와의 외교에 몰두하는 모습입니다. 중국의 경제력은 25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지만, 외교 전략과 품격은 오히려 퇴색하고, 우리나라도 그런 중국에 맞서 상대할 만한 외교관은 사라져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