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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목소리로 잃은 몇살인지 두 불구하고 것을.(시사저널=정윤성 기자)
쇠사슬은 언제 등장할까. 제국주의 시대에는 식민지 노예를 결박해 머나먼 항구로 끌고 가기 위해, 전쟁터에서는 포로의 손발을 묶어 자유와 존엄을 지워버리기 위해 쓰였다. 인권의 개념이 정착한 현대에 들어와선 범죄자나 처벌 대상을 구금할 필요가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예나 지금이나 쇠사슬은 단순한 금속을 넘어 힘의 비대칭을 드러내고 지배와 복종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그 쇠사슬이 미국 조지아주의 한국 기업 건설현장에 파견된 한국인 수백 명의 팔과 다리, 허리를 옥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아름다운 발표"라며 가장 성공적인 한미 협력 사례로 꼽았던 바로 그 투자의 핵심 거점에서 일어난 일이다. 9월4일 미국 국토안보수사국( 금강산관광 HSI), 이민세관단속국(ICE) 등은 조지아주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대규모 불법 체류자 단속을 벌여 한국인 근로자 317명을 체포했다. 쇠사슬에 줄줄이 묶여 연행된 근로자들은 곰팡이와 벌레가 들끓는 수용소에서 불확실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이민 차 할부금 단속으로 체포됐던 현대차-LG엔솔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 직원들이 애틀랜타 공항으로 향하기 위해 9월11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을 나서며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 당국의 교섭으로 장기 구금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미국의 최대 교역국 전당포 이자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인 한국을 상대로 전례 없는 강경 단속을 벌인 배경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서로를 치켜세운 지 불과 열흘 만에 벌어진 정반대 사태를 두고 '누구의 책임이냐'는 논쟁도 거세다.
그러는 사이 한국 기업들은 불확실성이라는 벼 육아비법 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관세 문제에 따른 어려움을 타파하고자 대미 활동을 활발히 늘리던 기업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한껏 움츠러들었다. 상당수 대기업이 미국 출장 제도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 가운데 "차라리 관세를 물고 미국에 가지 않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태 수습에 협조적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그 속내는 알 수 없다는 제2금융대학생대출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쇠사슬'을 통해 드러난 힘의 불균형이 언제든 다시 작동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 속에 이재명 정부의 외교 역량도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출장 전면 재검토"…커지는 '美 투자 포비아'
조지아주에 구금됐던 한국인들은 9월12일 오후 3시께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을 비롯해 외교 당국이 총력 대응에 나서면서 장기 구금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고, 향후 불이익도 최소화했다. 이 대통령은 9월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인들을 신체적 속박 없이 구금 시설에서 공항으로 호송하는 문제를 푸느라 당초 계획보다 출국이 늦어졌다고 밝혔다. 조 장관은 재입국 시 불이익을 주지 않기로 미국 측으로부터 약속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당초 9월10일 미국 애틀랜타 공항에서 출발할 예정이던 귀국 전세기 이륙이 연기된 것도 한국 숙련 인력의 활용 방안을 검토하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 숙련된 한국인 근로자들이 미국에서 계속 일하며 현지 인력을 교육·훈련시킬지, 귀국시킬지를 정부에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조 장관은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배려와 양 정상 간 신뢰 관계 덕분에 사태가 해결됐다고 분석했다.
외교 당국의 노력으로 사태가 봉합 수순에 들어갔음에도 남은 의문은 적지 않다. 가장 큰 물음표는 투자와 단속 사이의 모순에 붙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사태를 두고 "미국 내 제조업 확대와 이민정책의 모순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관세 협상 과정에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미국 측도 이를 반기던 상황에서 정작 현장의 한국 기업 관련자들이 포박돼 끌려갔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조 장관도 이에 대해 "음모론 같은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잘 분석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정치적 해석이 분분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해묵은 비자 문제가 꼽힌다. 구금된 근로자 상당수는 장비와 설비를 담당하는 협력사 직원으로, 미국 현지 근무를 위해선 전문직취업(H-1B) 비자 등이 필요하다. 문제는 추첨제로 발급되는 이 비자의 한국인 몫은 전체의 1%로 2200여 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재계에선 하늘의 별 따기로 통한다.
이 때문에 우리 기업들은 손쉽게 발급받을 수 있지만 취업활동은 엄격하게 금지되는 전자여행허가(ESTA)나 단기상용(B-1) 비자를 통해 단기간 근무 후 귀국하는 방식에 의존해 왔다. 엄밀히 따지면 '편법'이자 '불법'이지만, 공장 완공 일정을 맞추려면 숙련된 한국인 노동자를 즉시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관행으로 자리 잡았던 셈이다. 미 정부도 이 같은 방식을 일정 부분 묵인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강력한 이민 규제정책이 시행되면서 이민 당국의 대대적 단속이 이뤄졌고, 결국 이 '관행'이 레이더망에 걸려든 것이다. 물론 미 이민 당국이 정치적 성과를 내기 위해 한국 합작 공장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처음부터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떳떳하게 일할 수는 없었을까. 사실 수년 전부터 관행과 불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온 우리 기업들은 정부에 비자 확대를 꾸준히 요구해 왔지만, 논의는 매년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재계는 올 초에도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대미 투자 확대와 노동 수요 증가를 고려해 비자 확대를 요청한 바 있다. 일찌감치 편법적 방식이 관행으로 자리 잡힌 데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 재계의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8월25일 워싱턴 백악관에 도착한 이재명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AP 연합


트럼프의 속내 "교육 후엔 미국인 고용해라"
일각에서 정부 책임론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정책이 예견된 일이었음에도 정부 대응은 안이했다는 것이다. 실제 미 당국이 공장을 급습해 한국인 근로자들을 집단 체포하는 초유의 '작전'이 펼쳐졌음에도 외교 당국은 사전 통보는커녕 사후 설명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 사태가 단순 단속이 아니라 올해 들어 내내 이어진 미 당국의 조사와 법원의 수색영장에 기반한 조치였다는 점에서 한미 간 외교 채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한 전직 외교부 고위 관료는 "국토안보수사국이 장기간 조사활동을 펼친 뒤 한국이라는 동맹국을 상대로 한 이례적인 대규모 단속 작전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사전에 인지하거나 미 측의 경고가 먼저 이뤄지고 소통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라며 "단속 자체를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런 극단적인 체포·구금을 비롯해 영상까지 전 세계에 공개되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간 정식 취업비자 없이도 한국 기업의 활동이 암묵적으로 용인됐던 점을 감안하면, 정부로서도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 관세 협상과 한미 정상회담 등으로 한미 관계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상황에서 미국 측의 '뒤통수 공격'을 예상하기도 어려웠다. 이에 정부도 이번 사태에 대해선 이례적으로 강한 유감을 표하는 모습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미국에서 일부 ESTA로 취업한 (사람들을) 보면 법 위반도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정부는 외교적으로 가장 강한 톤으로 우려와 유감을 표했다"고 전했다.
주요 외신들 역시 한국의 '편법'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두 얼굴'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제조업 재건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공격적인 이민 단속을 벌이는 등 두 정책이 충돌했다"며 "아시아 기업들에 냉각 효과를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앞에서는 관세를 무기로 거액 투자를 받아내면서 필요한 인력 파견에는 상반된 잣대를 들이대 불필요한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이런 지적을 의식하듯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검토하기로 했다. 미국의 엄격한 비자 제한 정책이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들의 전문·기술 인력 수급을 가로막는 탓에 이번 사태와 같은 '편법'을 낳을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李 "비자 문제 협상 중…미국도 해결 필요 있어"
다만 제도 개선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남는 분위기다. 미국의 구상은 한국 비자 문제를 자국 근로자들의 기술 교육·훈련·습득의 수단으로 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국토안보부와 상무부가 고숙련 해외 근로자의 입국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대응하고 있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외국 기업이 미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함께 일하며 서로 훈련하고 가르쳐주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전문가를 불러들여 미국 국민을 훈련시켜 그들이 직접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미 측 발언을 종합하면, 비자 제도 개선의 방향은 결국 일부 산업에서 미국의 경쟁력 강화와 이익 확보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미 당국이 비자 제도를 개선한다 해도 현지의 비숙련자를 교육하며 일을 한다는 건 기업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자 제도 개선 방향이 미국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질수록 한국 기업들의 셈법만 복잡해지는 셈이다. 
사태의 여파는 이미 국내 기업에 본격적으로 드리우고 있다. 기존처럼 필요 인력을 적기에 미국으로 들일 방법이 사실상 막히면서 대미 투자 계획에 대한 수정도 불가피해졌다. 실제 상당수 국내 기업이 수십 년 동안 운영한 미국 출장 제도 자체를 원점에서 다시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ESTA 및 단기 B-1 비자를 활용한 업무용 출장을 전면 중단하거나 최소 1개월 이상 출장 때는 주재원(L-1) 비자를 받는 식으로 내부 지침을 세운 것이다. 이런 방식으론 서류 절차에만 수개월이 걸리는 데다 필요 인력이 모두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는 게 재계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인 전문인력 전용 비자 쿼터인 'E-4 비자' 신설을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정부는 2012년 이래 E-4 비자를 신설하는 '한국 동반자법(PWKA)' 입법을 미 정부·의회를 상대로 추진하고 있지만, 매번 통과되진 못하고 있다.
재계는 9월9일 조현 장관에게 비자 문제에 대해 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협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9월11일 기자회견에서 "대미투자와 관계된 비자 발급을 정상적으로 운영해 달라거나 TO(여유분)를 확보하든지 새로운 유형을 만들든지 하는 협상도 지금 하고 있다"며 "미국도 현실적인 필요가 있으면 그 문제는 해결하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